[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] 슬픔은 마지막 순수
슬픔은 마지막 순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참 신기했다 /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것만 보였다 / 유독 다가오는 것은 나와 닮았고 / 모양뿐 아니라 생각의 틀도 닮았었다 / 오늘 나는 눈을 뜨고도 심하게 넘어졌다 / 서로의 간극이 너무 커서였을까, 그럴 리 없다 / 바다와 하늘은 멀어도 맞닿아 서로의 모습으로 닮아가고 있는데 // 자유롭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/ 한 순간 스치는 생각을 벗지 못하는 / 슬픔은 무거움이란 생각이 든다 / 슬픔은 참아야 할 무엇이자 짊어져야 할 멍에란 생각에 잠을 설쳤다 / 결코 그럴 리 없다 손을 저어도 옥죄이는, 자유를 침해하는 무례는 / 누구도 받아드리기 힘든 짐이 되었으리라 // 늦은 밤 창문을 통해 나를 내려 보는 별들의 반짝임도 / 발자국 소리를 따라 깨어나는 새벽의 밝아옴도 /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까지 혹독한 열병을 치를지라도 / 다시 태어나 당신의 세상으로 날아가리라 / 눈을 감고서야 보이고 입을 다물어서야 전할 수 있는 세미한 음성이 되어 / 푸르게 피어날 봄의 향기로 전해올 때까지 // 나 한 밤을 뜬 눈으로 지샌 반가움으로 다가갈 수만 있다면 / 내 마지막 순수의 노래로 당신을 뜨겁게 맞이할 수만 있다면 / 이게 다가올 세상에 가능하기만 한다면 세익스피어 ‘리어왕’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끝이 난다. 초도의 군주 리어왕은 숨이 끊어진 딸 코델리아를 안고 무대 위를 걷는다. 이 모습은 비극적 상실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이자, 슬픔의 무게에 대한 은유다. 사람들이 슬픔을 말할 때 가장 흔하게 쓰는 형용사는 ‘참을 수 없는’이다. 그러나 슬픔은 참아야 할 무엇이자 짊어져야 할 짐이다. 슬픔이란 미처 체험 하지 못한 우리의 무지와 한계에서 비롯 된다. 무한에 대한 열망의 상실에서 비롯된다. 슬픔은 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. 슬픔은 자기 욕구가 거절 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. 슬픔은 상실감과 희생을 거부하는 감정 표출이 아닐까 한다. 그러나 슬픔이 있어 기쁨이 있고, 죽음이 있기에 현재의 삶에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. 슬퍼한다는 것은 삶을 향한 회한이 담겨 있다는 증거이고 희망을 향한 첫 걸음이 아닐 수 없다. 슬픔에 잠겨있으면 미처 알지 못했던 경이로운 삶의 국면이 펼쳐진다. 슬픔 속에는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듯한 침잠과 무기력과 공허함이 따라온다.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삶의 역동성이 잠재 해 있기 때문에, 사람의 사고란 무한을 향한 갈망과 불리 될 수 없기에 거기서 오는 슬픔 또한 가슴 저미는 우리를 돌아 보게 한다. 과연 무엇이 슬픔인가? 슬픔의 본질은 무엇인가? 슬픔이란 단순한 감정을 표현한 단어지만, 그 속에는 수 많은 의미와 서로 상반되는 경우의 감정이 담겨 있다. 우리는 흔히 괴롭다, 슬프다, 울고 싶다는 절망의 편에 자주 선다. 슬픔은 무언가의 불일치에서 일어나는 감정임에 틀림없다. 무언가 충족 되지 않는 결핍감이 심해 질 때, 돌이킬 수 없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 슬픔을 많이 느낀다. 그래서 모든 생명은 슬픈 것이다. 슬픔뿐 아니라 기쁨, 분노, 사랑, 즐거움, 행복감 등 우리 감정 대부분이 현실에 대한 신체감각의 반응이다. 그 중에서도 슬픔은 뭔가를 잃고 빼앗긴 상태에서 시작 되기에 모든 사람들은 남이 모르는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. 아름다운 얼굴에는 미소가 있지만 눈 속에는 슬픔이 가득한 사람들도 많다. 행복해 보이는 데 안으로는 슬픔을 숨기고 살아가는 힘든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. 나는 여기서 자유와 승화라는 두 단어를 떠 올렸다.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일을 하거나 또는 그처럼 지낼 수 있는 상태인 이 자유는 모든 사람의 중요한 권리 가운데 하나임을 기억해야 한다. 억압이나 제약이 없는 상태, 나쁜 것이나 싫은 것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의지를 말한다.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와 어떤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. 이 두 가지 자유로부터 우리가 겪는 슬픔은 극복 될 수 있으리라 본다. 그리고 그렇게 믿는다. 어떤 현상이 더 높은 상태로 발전하는 것이 승화의 정의다. 어떤 물질이 액체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기체에서 고체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. 무엇이 더 높은 경지나 상태에 이르는 것. 슬픔이라는 참담함을 오히려 꿈과 이상을 통해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힘. 충동이나 욕구를 예술 활동이나 종교활동으로 사회적, 정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바꾸어 내는 것. 나를 누르는 슬픔의 무게를 자유와 승화의 정신으로 내려 놓는 일. 그래서 더 높은 뜻과 미래를 향해 비상하는 일.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정말 잘 살은 인생이 될 것이다. (시인, 화가)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순수 마지막 순수 감정 표출 우리 감정